인터뷰
화제의 인물
저는 사진이 좋아 산을 올랐습니다
지난 10월 초 어느 한 여류작가의 사진전이 충무로에서 열렸다. 박·인·숙! 37점의 사진은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.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그녀가 말하려는 메시지가 아쉬움 없이 잘 표현되어있는 사진은 그녀의 역동적인 힘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. 그녀의 사진은 사진을 관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.
서울 전시 마지막 날 전시회장에서 박인숙씨(40세)를 처음 만났다. 당당하고 시원스런 말투에서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녀의 성격을 금새 알 수 있었다. 이천에서 열릴 2차 전시회가 끝난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며 전시회장을 빠져 나왔다.
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10월 중순 어느날 충무로 찻집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. 두 번째 만남에서 느껴지는 서먹한 벽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. 그녀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지금의 자신이 있도록 적극 후원해 준 남편의 아내이다. 또한 그녀의 이름 뒤에 붙는 또 하나의 단어는 사진작가. 박인숙씨가 사진작가가 된 계기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. 그 당시 사진을 하시던 미술선생님의 암실에서 뽑은 흑백 사진을 보면서 그때부터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. 그래서 일년 용돈을 고스란히 모아 올림푸스 카메라를 샀던 것이 시작이었다.
그 이후 홍익대 건축과를 다니던 친구가 유럽 10개국을 여행하며 찍은 건축사진을 보고 또 한번의 충격을 받게 된다. 고풍스런 유럽 풍경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환등기를 통해 처음 보게 된 것이다. 슬라이드 필름의 생생함에 감탄을 하고 그때부터 사진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. 그 꿈이 현실로 실현되기까지 친구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. 88년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박인숙씨는 잠시 꿈을 접어 두었다. 다시 사진에 대한 꿈을 펼치게 된 계기는 93년 남편이 일본 출장을 다녀오며 사다준 비디오 카메라를 받으면서부터였다.
그 당시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에서 비디오를 찍다가 원장의 부탁으로 유치원 행사를 공식적으로 촬영하게 되었다. "일은 그렇게 우연히 시작되더라구요" 그 이후 1년 뒤 비디오 촬영 수입으로 'EOS 1N' 카메라를 살 수 있었다. 그 때부터 비디오 촬영 기술을 밑바탕으로 카메라 조작법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. 하나를 좋아하면 만족스러울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 탓에 새벽까지 카메라를 쳐다보며 몇 달간을 보냈다. 순전히 혼자의 힘으로 독학하며…. 그러던 차에 동굴 사진가 석동일씨를 만나 오대산, 치악산, 용문산이며 6개월 동안 식물과 야생화, 버섯 등 도감 사진을 찍으러 다니게 되었다.
자연스레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어 혼자 야생화를 찍으러 산으로 들로 다니기를 수 차례. 빙판길에 차가 돌아 큰 사고를 당할 뻔하고 지리산에선 심한 현기증으로 구조를 요청하고픈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. 제일 잊지 못하는 사고는 야생화를 찍으러 갔다가 넘어져 20여 바늘을 꿰매는 큰 상처를 입고 일주일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 했던 일이다. 그때 두 아이와 남편에게 미안해 사진을 그만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되레 회사 도서관에서「사진학개론」을 빌려다 주는 것이 아닌가. 이런 남편이 있었기에 지금의 박인숙씨가 있는 것이 아닐까? "남편이 너무도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. 그때부터 일주일 동안 남편이 빌려다준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어요"라며 이야기를 계속해 풀어 나갔다.
산악사진은 5년전 1997년 안성의 황은수 장로와 당시 한국사진작가협회 장종기 부이사장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. 설악산, 지리산, 한라산 등 산사진 작업은 박인숙씨에게 있어 하나의 전투와도 같았다. 산행 경험이 풍부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체력의 한계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그 순간마다 산은 박인숙씨에게 선경을 드러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. 그 매력에 매료되어 산 사진이라는 테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. 무더운 여름, 설악의 비경을 찍기 위해 15킬로그램의 촬영장비를 메고 빵과 과일로 끼니를 때우며 한계령에서 대청봉을 넘어 공룡능선을 3박4일 동안 걷고 또 걸었으며 지난해 겨울, 폭설이 내렸을 때 지리산 산장에서 5박6일을 지내면서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모진 날씨에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천왕봉의 일출과 제석봉의 일몰을 촬영하기도 했다. 또 한라산의 물이 고인 백록담을 찍기 위해 비오는 날 밤 12시에 우의를 입고 왕복 20Km의 멀고도 지루한 길을 강행군해야 했다. 그렇게 하여 천국을 연상케 했던 내설악의 신선봉 운해를 사진에 담았듯이 박인숙씨는 산이 허락한 경치를 찍을 수 있었다.
이렇게 모인 사진으로 사진집「빛 그리고 생명」의 출간과 2회의 개인전을 열게된 것이다.
99년 1회 개인전 <우리꽃과 사계산하>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 이어 두 번째 개인전이다.
사진이 좋아 산에 갔다는 박인숙씨. 이번 전시회는 박인숙씨 본인에게도 특별한 전시회였다.
그동안 소홀했던 남편에 대한 내조와 아이들의 뒷바라지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전시회를 준비한 것이다. 사진을 찍는 것 보다 사진전을 여는 것이 더 어려웠고 이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사진집을 만드는 작업이었다고 말하는 박인숙씨는 전시회를 열며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함이 없었다. 그러나 이 전시회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줄은 그녀도 몰랐다. 그녀에게 있어서도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전시회는 대 만족이었다. 한 외국인이 서투른 글씨로 남기고 간 방명록에 '더 이상, 도데체' 라는 짧은 문구와 같이 아낌없는 극찬이 끊이질 않아 당황해 하면서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사진을 더욱 열심을 다할 것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.
"많은 예술인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해 왔듯이 저는 사진이라는 수단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" 라며 앞으로도 사진을 찍기 위해 산을 오를 것이라는 박인숙씨와의 두어 시간의 대화를 끝냈다.
